골프의 성지, 세인트 앤드루스 올드코스
세인트앤드루스 올드코스와 링크스 골프 아카데미, 골프 순례지로서의 의미를 함께 읽는 칼럼 묶음입니다.
골프 코스와 현지 문화에 관한 칼럼, 그리고 LinksGage가 기록해 둔 투어 이야기를 함께 모았습니다.
Weekly Chosun Columns
주간조선에 게재된 윤영호 칼럼을 코스와 주제 중심으로 연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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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앤드루스 올드코스와 링크스 골프 아카데미, 골프 순례지로서의 의미를 함께 읽는 칼럼 묶음입니다.
골프가 개인 운동으로 발전한 배경과 스코틀랜드 문화의 정신을 연결해 읽는 칼럼입니다.
트럼프 턴베리와 트럼프 애버딘을 함께 떠올리며, 트럼프가 개발한 골프장과 골프 비즈니스의 맥락을 살펴보는 칼럼입니다.
스코틀랜드 하이랜드 링크스의 모델로서 로열 도녹의 의미와 골프클럽·골프코스의 차이를 함께 다룬 칼럼 묶음입니다.
디오픈의 역사와 로열 트룬, 프레스트윅의 링크스 정서를 함께 읽는 칼럼입니다.
뮤어필드를 중심으로 핸디캡, 골프 룰, 영국 골프클럽 문화의 출발점을 읽는 칼럼 묶음입니다.
아일랜드 서해안 링크스의 날 선 매력과 모허절벽 인근 라힌치 타운의 정서를 함께 소개하는 칼럼 묶음입니다.
대서양의 바람과 파도가 만든 아일랜드 대표 링크스 밸리부니언을 다룬 칼럼입니다.
북아일랜드의 역사, 디오픈 코스 로열 포트러시, 현지 캐디 문화를 함께 볼 수 있는 칼럼 묶음입니다.
월튼히스와 로열 블랙히스를 통해 히스랜드와 오래된 골프클럽 문화를 연결해 읽습니다.
링크스, 파크랜드, 히스랜드의 차이를 런던 골프 환경과 함께 설명하는 칼럼입니다.
웨일스 대표 링크스 로열 포트콜의 첫인상, 클럽하우스의 환대, 바닷바람 속 라운드 경험을 함께 소개합니다.
잉글랜드 최초의 골프코스에서 골프의 원형을 확인하는 칼럼입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훈련장이라는 역사적 배경과 손톤 36홀 링크스의 가치를 함께 읽는 칼럼 묶음입니다.
아일랜드 링크스와 디오픈 개최지의 조건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칼럼입니다.
골프가 주는 즐거움 속 외로움과 지루함의 의미를 돌아보는 칼럼입니다.
세베 바예스테로스를 통해 사랑받는 골퍼의 태도와 매력을 읽는 칼럼입니다.
웨일스 펜나드 골프클럽을 통해 독특한 링크스 지형을 소개하는 칼럼입니다.
도심 속 퍼블릭 골프와 영국 골프 대중화의 역사를 함께 읽을 수 있는 칼럼입니다.
더그로브의 골프 리조트 경험과 현대 프로골프의 변화를 함께 생각해 보는 칼럼 묶음입니다.
여성 골퍼들이 핸디캡 시스템과 골프 발전에 남긴 역할을 조명합니다.
디오픈 개최지 로열 세인트 조지를 통해 링크스와 골프의 격을 읽는 칼럼입니다.
클럽하우스의 기원과 개방의 역사를 통해 골프클럽 문화를 이해하는 글입니다.
영화와 품격 있는 골프라는 질문을 통해 골프의 본질을 묻는 칼럼입니다.
스코틀랜드 골프의 초기 역사와 공동체 문화를 다룬 칼럼입니다.
찰스 리스의 그림을 통해 골프의 오래된 장면과 숨은 역사를 읽습니다.
로열 블랙히스를 통해 오래된 골프클럽의 역사와 전통을 살펴보는 칼럼입니다.
하이랜드는 산악 지형이고, 로랜드는 평지죠. 골프는 로랜드의 문화였다고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이게 단순한 지형의 차이냐면, 그 이상이죠. 그들은 언어가 다르고, 문화가 다르고, 정치 체제가 다르고, 종교가 달랐어요. 먼저 언어부터 알아볼까요?
하이랜드는 게일어, 로랜드는 게르만어인 스코티시어를 사용했는데요. 셀틱족의 하이랜드 사람과 게르만 혈통이 강한 로랜드 사람은 외모적으로 구분이 될까요?
우리가 스코틀랜드 문화로 알고 있는 상당수는 하이랜드의 것이에요. 그러나 로랜드는 잉글랜드와 상당히 유사했습니다. 이 점에서 ‘스코틀랜드 주류는 여전히 독립을 원하지 않는다’라고 말할 수 있는 요소가 역사적으로 있어요.
영국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을 꼽으라면 앙글리칸(성공회)의 등장이죠. 1534년에 헨리 8세의 이혼 문제로 등장했다고 세계사 시간에 배웠죠. 영국 역사를 넘어 세계사적으로 매우 큰 영향을 미쳤어요. 그때 스코틀랜드는 어떠했을까요?
하이랜드와 로랜드의 차이를 중심으로 스코틀랜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는데요. 로랜드가 축구와 골프를 즐길 때 하이랜드 사람들은 무엇을 했을까요?
스코틀랜드를 이해하기 위한 핵심 중 하나가 클랜이죠. 클랜은 하이랜드의 특징이지만, 로랜드에 없었던 것은 아니에요. 그러나 로랜드 클랜은 클랜의 성격보다 봉건제의 성격이 강했고, 스스로를 클랜으로 부르기보다는 패밀리로 불렀어요.
스코틀랜드하면 남자들이 입는 치마와 옷감에 새겨진 격자무늬(타탄)가 생각나죠? 그리고 백파이프도요.
하이랜드에 뿌리 깊은 전통을 두고 있는 위스키는 하이랜드의 영혼이라고 할 수 있죠. 그리고 스코틀랜드에서 골프와 위스키는 한 묶음이죠. 라운드 직전에 위스키를 주는 골프클럽이 있어요.
‘영국 음식은 맛이 없다’는 말이 있지만, 그게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해요. 바람이 몰아치는 거친 링크스 코스에서 18홀을 돌고 나면 몸은 자연스럽게 모든 음식을 맛있게 받아들이죠.
하이랜드와 로랜드가 인종, 언어, 문화, 지형, 산업적으로 달랐어요. 그런데 많은 이들이 이제는 그것을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스코티시라는 하나의 정체성을 잘 만들어 왔죠.
그는 스코틀랜드 역사에서, 영국 역사 전체에서 가장 낭만적이고, 비극적이며, 신비한 인물이에요. 어쩌면 실존이 아닌 것으로 의심되는 아더왕 이야기 보다도 더요. 이 인물에 영국과 스코틀랜드 역사가 함축적으로 들어가 있어요.
기원전 8000년부터 그레이트 브리튼 섬에서 사람들이 넘어 가서 살았고, 신석기 청동기 철기 시대를 거쳐 유럽 대륙에서 몇 차례 이주 물결이 있었던 것으로 보여요. 오늘날과 같은 셀틱 족이 아일랜드의 주류가 된 것은 기원전 600년경이라고 하네요.
결론부터 말하면, 위스키는 아일랜드가 먼저죠. 골프는 당연히 스코틀랜드가 먼저지만, 어디가 더 좋냐고 물으면 답하기 곤란하죠.
아일랜드는 1500년대 후반 1600년대 초반부터 잉글랜드로부터 조직적이며 광범위하게 해체 압력을 받았죠. 스코틀랜드처럼 타탄 체크무늬 같은 저항의 상징을 가질 여유도 없었어요.
영국 정부나 왕실이 역사적 탄압과 아일랜드 대기근에 대해 공식적으로 ‘석고대죄’ 수준의 완전한 사죄나 법적 배상을 한 적은 없어요. 영국은 오랫동안 자연재해나 정책적 한계 속에서 발생한 '부작위 과실' 정도로 치부하며 책임을 회피해 왔죠.
라힌치를 와이프 때문에 알게 되었고, 온 가족이 라힌치로 여행을 떠났죠. 회원들만 치는 날이었는데, 클럽 프레지던트인 존 글리손의 특별히 칠 수 있도록 해주었어요.
19세기 후반 아일랜드로 골프가 전파될 때는 산업화 이후라서 흙을 옮겨 통로를 낼 수 있는 장비가 있었죠. 그래서 모래 언덕이 심한 곳에도 골프코스를 낼 수 있었죠.
골프코스를 평가해 달라는 말에 처음으로 라힌치, 발리부니온과 둔벡을 이번에 경험한 골퍼는 이렇게 말했어요.'라힌치는 따뜻한 엄마 품 같고, 발리부니온은 강인한 아빠 어깨 같다.'